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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9 16:13
by 비회원

우연한 기회에 다큐멘터리로 마취술에 대한 역사가 나와서 보게 되었어요.
지금은 당연한 일이지만, 옛날에는 수술을 할 때 마취약이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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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에 들어왔다고 하는데요. 그 이전에는 마취없이 맨 정신으로 수술은 했다고 합니다. 환자의 고통이 엄청났다고 하는데요. 수술을 할 때 건장한 남자 여럿이서 환자를 붙잡고 못 움직이게 하거나 사지를 꽁꽁 묶어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술실은 늘 외진 옥상이나 지하에 있었다고 해요. 그 비명소리가 너무 처절해서.... 외과의사에게 가장 중요할 자질은 빠른 수술이었습니다. 인간이 신체가 잘려나가는 고통을 3초 이상 버티는게 힘든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초라도 짧게 수술을 끝내는 것이 의사의 몫이었습니다. 환자에게 그 3초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평생의 악몽으로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도 많았고 심지어 고통의 쇼크로 인해 심장마비로 죽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환자와 의사에게 힘든일이었죠.

(험프리 데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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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브리 데이브

18세기 말에 대마초나 아편처럼 어떤공기를 마시고 몽롱해 지는 것을 즐기는 사교모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웃음가스 인데요. 이 웃음가스는 아산화질소로 통증완화에도 효과가 있음을 험프리 데이브가 발표했다고 합니다.

(호러스 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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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가스의 이런 효능을 모르고 웃음가스 환각파티는 매우 유명했습니다. 호러스 웰스와 윌리엄 모턴은 고통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연구중이었으며 웃음가스의 효과를 보기위해 환각파티에 갔다고 합니다. 아산화질소가 발표된 후 100년 후였습니다. 웰스는 이 웃음가스가 고통을 줄여줄 수 있을꺼란 생각에 자기 자신에게 실험을 하고 아프지 않음을 느끼고 다른 환자들에게 행하였고 아프지 않게 수술한다는 소식에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마취법을 개발했다고 생각한 웰스는 당시 가장 유명했던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공개시술을 하는데 그때 시술환자 선정과 용량조절 실패로 수술하는 환자가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바람에 망신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 환자는 알코올 중독자에 매우 뚱뚱한 사람이었습니다.(오늘날에 이런 사람은 마취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크리포드 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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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외과 의사 크리포드 롱은 마취연구를 하는 의사중에 한명으로 에테르 실험을 하고 있었고 1842년 에테르 마취를 이용하여 8번을 성공합니다. 그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고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웰스가 아산화질소로 공개시술로 대망신을 당하고 그 영향에 더욱더 신중에 신중을 더해 발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윌리엄 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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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업자이자 마취연구의 선배였던 웰스가 대망신을 당했지만 모턴은 아산화질소 연구에 대해 좀더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버드 의대에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찰스 잭슨을 만나게 됩니다. 잭슨은 실험실에서 에테르 용기가 깨지는 실수를 통해 에테르에 전신마취효과가 있음을 수업시간에 강의하게 됩니다. 그 수업을 듣던 모턴은 에테르 연구를 하게 됩니다. 연구가 원할히 진행되어 모턴은 1846년 10월 16일 공개시술을 하게 되었는데 흡입용 에테르로 성공적인 수술을 거두고 수술에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모턴은 웰스의 실패를 딛고 마취의 개척자 이자 우선권자로 우뚝서게 됩니다.

웰스는 미국에서의 망신을 딛고 유럽으로 건너가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기양양해서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자신의 동업자였던 모턴의 성공을 보고 질투에 눈이 멀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 스스로에게 엄청난 실험을 하고 결국 플로르포름 중독상태에 빠져 여성들에게 황산을 뿌린 혐의로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자신을 못 견디며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찰스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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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턴은 특허권뿐만 아니라 명예와 재물까지 얻게되었습니다. 이에 잭슨은 자신이 아이디어를 주었다며 주장하였습니다. 잭슨은 한번도 자신이 스스로 연구하거나 발표한 적은 없고 다른 사람의 발표를 보고 뒤늦게 주장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 모턴의 연구가 어느정도 성공단계에 이르자 그를 찾아가 어느 정도 이익금을 달라고 요구하고 이에 모턴은 받아들입니다. 당시 모턴의 에테르 실험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아 잭슨의 명성이 필요했음을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나중에 유럽 이권다툼을 두고 엄청나게 다투면서 그들의 인생을 허비합니다. 그때 크리스퍼 롱이 모턴보다 먼저 시술했다고 주장하니 마취에 대한 저작권이 삼파전 양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모턴은 오랜 법정 다툼으로 파산하여 고향에 내려갔다가 1868년 급사하였고 찰스 잭슨은 1973년 정신질환은 얻어1880년 쓸쓸히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호러스 웰스는 90%성공하고 10%를 완성하지 못해 결국 감옥안에서 자신의 혈관을 잘라 생을 마감했고
윌리엄 모턴은 100% 성공했지만 찰스 잭슨과의 지루한 특허권 분쟁속에서 파산하여 고향으로 내려가 급사를 했습니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 고통으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마취제에 관련하여 유일하게 생전에 인정을 받고 편안하게 삶을 산 사람은 크리스퍼 롱이었습니다.

마취에 대한 엄청난 이야기 흥미롭지 않으세요?
저는 엄청나게 흥미로워 이렇게 정리하여 올립니다.
by 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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